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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북한운동연합대표 박상학 고향 직업 결혼 프로필 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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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학 직업은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로서, 1968년 2월 16일 북한의 량강도 혜산시 출생으로 북한의 명문대학인 김책공업종합대학(학력/대학교)에 입학했답니다. 예비과 과정을 4개월 다니고 학업 성적이 낮아 퇴학 당했답니다. 미혼으로 보이기에 결혼 부인 아내 와이프 등은 사실이 아니며 가족관계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답니다.

 

김일성사회주의노동자청년동맹 청년돌격대 선전지도원을 역임한 바 있다고 한답니다. 지난 1998년 탈북하여 1999년에 대한민국에 정착했답니다.

 

숙부들이 보위부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다 사망했고 사촌들은 꽃제비가 되어 어디론가 사라졌다는 소식을 들은 뒤에 2005년부터 북한의 독재 정권에 대한 내용을 담은 대북전단 배포 등의 활동을 벌이게 되었다고 한답니다.

 

 

지난 2013년에 노르웨이 '오슬로 자유포럼'에서 '창의적 반대운동을 위한 바츨라프 하벨상'(Vaclav Havel Prize for Creative Dissent)을 수상하였답니다. 박상학이 남한에 와서 가장 논란을 일으킨 것이 바로 대북전단 소위 삐라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와 그의 단체는 지속적인 공개삐라 때문에 진보 단체와 마찰을 일으켰던 바 있답니다. 물론 박상학은 이 진보 단체들을 싸잡아 종북으로 단정지으며 자신의 고집을 그대로 강행했답니다. 이런 삐라 살포 논란으로 인한 대립이 가장 크게 격화된 것이 바로 지난 2014년 10월 25일에 임진각에서 있었던 극우 단체와 파주 시민들 간의 충돌이었답니다.

 

 

사건이 일어나기 2주일 전인 2014년 10월 10일 경에, 대북풍선을 향해 북한이 쏜 14.5mm 고사총 사격으로 인해 일부 탄환이 착탄되는 일이 벌어졌답니다. 이날 오전10시경 20개 언론을 대동하고 떠들썩하게 임진각 쪽에서 박상학의 풍선행사가 진행되었답니다.

 

이를 안 북한은 잔뜩 긴장하고 있던 중 연천 태풍전망대 근처에서 조용히 오후3시부터 날리던 이민복 대북풍선단의 풍선을 보고 총격한 것이랍니다. 사실 레이더와 아울러서 열, 소리, 육안으로 안보이는 풍선은 웬만에서 발견하기 힘들답니다.

 

하지만 이미 꽹과리 친 박상학의 풍선행사에 긴장한 북한이 엉뚱하게 조용히 날리는 풍선에 대고 쏜 것이랍니다. 이로 인해 사회가 불안함에도 박상학은 보란듯이 또다시, 풍향도 안 맞는 날인 10월 25일 경에 본인의 자유북한운동연합과 최우원의 대북전단보내기국민연합 등의 단체는 임진각에서 삐라를 살포할 것이라고 예고했답니다. 그리고 예고한 대로 10월 25일 오후 1시경에 총 5만여 장의 대북전단을 날리겠다고 주장하며 대한민국 수호, 종북좌익 척결 등의 구호를 외쳤답니다.

 

 

하지만 그들은 예상치 못한 변수 하나를 맞이하게 되는데 바로 파주 시민들이였답니다. 파주 시민들은 극우 단체들이 진입하기 전부터 트랙터나 차량 등을 동원해 임진각으로 진입하지 못하게 철벽 마크했답니다.

 

그리고 몇 시간 동안 대치했으며 육탄전을 벌여 삐라를 뺏고 불 태우기까지 했답니다. 똘똘 뭉친 파주 시민들은 식당, 상점조차 그들에게 먹을거리 하나 팔지 않았을 정도였답니다. 결국, 반나절 가량의 대치 끝에 결과는 파주 시민들의 승리로 끝났고 박상학을 비롯한 극우 단체들은 김포로 옮겨 2만 장의 삐라를 살포했다고 한답니다.